2009년 07월 30일
[TC]'어리석은 전쟁' A.D. 2062.
모두가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랬기에 더욱더 참담한 최후였다.
'신 에너지 자원의 개발은 석유의 고갈보다 빠르지 못했다.' 이 모든 전쟁의 원인을 설명하는데에는 이 말 한마디면 족하리라. 절대적인 자원부족 앞에서 세계는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는 약속이나 한 듯이 파멸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가능한 모든 살상수단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사망자의 수는 급격히 늘었고 마침내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었다.
'MAD war'-상호확증파괴 전쟁, 아니 그건 말 그대로 '미친' 전쟁이었다. 첫 버튼을 누른 자도 스스로 깨닫고 있었으리라. 자신이 광기에 차있다는 것을. 그러나 명령권자의 이성 유무 여부와는 상관없이 전략병기는 발사되었고, 공격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 공격이 이루어졌을 때, 전 세계 도시의 삼분의 일이 잿더미가 되었다.
두 번째 공격이 이루어졌을 때, 전 세계 삼림의 삼분의 일이 불타서 사라졌다.
세 번째 공격이 이루어졌을 때, 전 세계 수원의 삼분의 일이 극독에 물들었다.
네 번째 공격이 이루어졌을 때, 전 세계 대지의 삼분의 일이 세균병기에 물들었다.
다섯 번째 공격이 이루어졌을 때, 전 세계 전략병기의 삼분의 일이 남았다.
여섯 번째 공격이 이루어졌을 때,-전 세계 전략병기의 잔탄 전부가 사용된 그 공격에- 전 세계 인류의 백만분의 일만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 아니 우리들은 또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지구 상에 남은 자원은 더욱 부족해졌고, 그것을 독점하려는 자들의 욕심은 더욱 커졌다. 검은 하늘 아래에서 시뻘겋게 타오르는 방사성 화마 속에서, 화학용제가 이룬 개울을 건너, 무너진 건물의 철골 위에 구축된 적의 진지를 향해서 우리는 전진했다. 정작 적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계속된 전쟁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깨닫지 못한채-그 참상 위를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싸웠다.
실로 '어리석은 전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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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전쟁
-A.D. 2062. 엔드 워(End War)발발 이후 30년.
"바보같군."
"뭐가?"
"이 모든게."
철골 더미 속에서 두 병사가 경계를 서고 있다. 한 병사는 육중한 저격용 총을 철골 위에 거치시켜놓고 있고, 다른 병사는 허리에 달린 탄통까지 이어진 길달나 탄띠를 부여잡고 다른 한손으론 가벼워보이는 장총을 어깨에 기대어놓고 있다. 장총의 끝은 회전하는 여섯 개의 총구로 갈라져있다. 말을 꺼낸 쪽은 장총을 든 쪽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알아듣냐?"
"경계나 똑바로 서."
"말을 꺼낸건 너잖아."
'장총'은 대꾸하지 않는다. '저격수'도 말 없이 거치한 총의 디지털 조준경을 들여다본다. 몇 분이 흘렀을까. '저격수'의 시야에 화염방사기를 든 병사가 들어온다. '저격수'는 그의 어깨에 둘러진 노란 띠를 확인하고는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겻다.
묵음, 그리고 병사는 쓰러졌다. '장총'이 '저격수'를 흘끗 쳐다본다.
"누구?"
안면 마스크에 걸러진 목소리는 탁하고 잡음이 껴있었다.
"노란 띠."
"장 일파로군."
장총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와 '저격수'의 어깨에는 아무것도 둘러져있지 않았다.
"이십분 벌었군."
"넉넉잡아 삼십분은 벌었어."
"좋아. 좀 쉬자."
그 말에 '저격수'도 따라 주저앉았다. 그리고서는 장갑복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장총'이 그 폼새를 보고 한마디 던졌다.
"뭘 그리 뒤적거려."
"가만히 있어봐."
그렇게 한참을 뒤적이던 '저격수'가 마침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든다.
"쨘-"
"뭐야?"
"오늘 아침에 순찰 돌다가 주운거지."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뭐긴 뭐야. 30년 전에 쓰던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잖냐. 생긴 것도 멀쩡해보여서 주워왔지."
"그럼 켜보던가."
"근데 건전지가 없더라."
"그래서?"
"너 건전지 모으잖아. 몇개 좀 줘봐라."
"너한테 줄거 없다."
"거 그러지 말고 좀 줘봐라 야."
"옛다."
'장총'은 질린 듯이 빈 탄입대를 열고서는 가득 차있는 건전지 중 몇개를 꺼내서 '저격수'에게 던져주었다. '저격수'는 신나서 건전지를 재생기에 결합하기 시작하다가, 몇초도 안돼 재생기를 뒤로 집어던졌다.
"뭐야?"
"AA건전지식이 아니라 이온 배터리식이야."
"바보같군."
'저격수'는 일어서서 거치된 총의 조준경으로 주위를 몇초 간 살펴보더니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보같다'라는 말이 나와서 물어보는 건데, 아까 '바보같다'고 한게 도대체 무슨 뜻이야?"
"이 모든게."
"그러니까 뭐가."
'장총'은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우리가 본대에서 낙오당한지 몇일 째지?"
"오늘까지해서 3일 째지."
"우리가 과연 복귀할 수 있을까?"
"글쎄-"
"도대체 우리는 지금 어디를 지향해서 걷고 있는거지?"
"그거야-"
"고작해야 한 시간 한 시간 버티는게 우리가 하는 전부잖아?"
"그렇긴 해도-"
"장 일파의 반란 자체도 웃겨. 그 빌어먹을 '세계통합기구'가 뭐가 낫다고."
"사실 우리 '작스'도 썩 형편이 좋은건 아니지. 사이보그 병사로의 대체 계획도-"
"솔직히 말해서, 서로에게 '형편'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저격수'는 '장총'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장총'은 감정이 격해졌는지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자고. 지금 우리가 싸우는 이유가 뭐지?"
"어- 그게 말이지-"
"상부에서 선전하는 거창한 대의명분이라도 들먹여보자. 내가 알기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한 탈출로의 확보'어쩌구였는데, 그나마 요즘에는 그것도 선전 안하더군."
"사실 동떨어진것이긴 하지."
"그럼 우리가 실제로 싸우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네가 그 무거운 군장을 메고, 빌어먹을 총을 짊어지게 만드는 이유를 말이야."
"밥을 주니까. 그리고 이 먼제속에서 살아가게 해주는 도구를 주니까."
"지금은 안 주잖아. 게다가 이 빌어먹을 소속 때문에 오히려 목숨이 위협받는 처지야."
"그러네."
"정작 우리를 이런 상황으로 몰아넣은게 상부인데, 우리가 지금 죽음을 무릎쓰며 싸울 이유가 있나?"
"그러면 우리에게 특별한 방편이 있어? 어디에서 싸우든 결국엔 같잖아. 이 전쟁을 계속하지 않는 이상, 그들로선 살아남을 방법이 없으니까."
"우리랑은 상관없잖아."
"우리도 어디에 붙지 않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어. 알잖아."
"빌어먹을. 우리를 이지경으로 만든 핵전쟁을 일으킨 자들을 위해 싸워야하고, 게다가 그놈들도 지금 자신들이 왜 싸우는지 모를텐데- 썅!"
'장총'의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저격수'는 땅바닥을 뒤적거렸다.
"바보같아. 정말 바보같다고.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부터 우리가 싸우는 이유조차, 아니, 이 전쟁 자체가 몽땅 바보같아. 이건 바보스러움을 넘어서서 '어리석은' 거라고."
'장총'은 열변을 마치고서는 숨이 차는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저격수'가 땅바닥을 뒤적거리는 것을 멈추고는 뭔가를 집어들었다.
"근데 그거 알아?"
"뭐가?"
'장총'은 의아스러운 듯이 고개를 들었다. '저격수'는 들고 있던 것을 '장총'에게 집어던졌다. 던져진 물체는 '팅'하는 소리를 내며 '장총'의 안면구에 부딪히고는 떨어져나갔다. '장총'이 그것을 집어보니 아까 '저격수'에게 준 그 건전지다. 그 꼴을 보던 '저격수'가 입을 열었다.
"이 상황에서조차 이런 걸 애지중지 모으고 잇는 너도 이 상황 만큼이나 바보같다는거야."
그 말에 '장총'은 허를 찔린듯이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둘은 말없이 일어나 철골더미를 빠져나와 폐허가 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해가 사라지고 어둑어둑해진 거리는 발광 방사성 물질이 내는 암록빛으로 무겁게 물들었다.
"그런데 말야."
'저격수'가 갑자기 발을 멈추고 입을 열자, '장총'이 의아스러운 듯이 뒤를 돌아다보았다.
"어리석다와 바보같다의 차이는 또 뭐야?"
'장총'은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이 상황에서 건전지 같은 걸 태평하게 모으는 나는 바보같은거고, 자기도 옛날 재생기 같은거나 줍고 다니면서 나를 보고 바보같다고 하는 너는 어리석은거지."
이번에는 '저격수'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둘은 다시 말 없이 거리를 걸었다. 짙게 드리운 방사능찌꺼기 먼지 사이로 순간적으로 차가운 달빛이 싸하니 불어왔다.
# by | 2009/07/30 23:11 | 자작소설 | 트랙백 | 핑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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